저장성·광둥성 등 기업 올 들어 수천 곳 문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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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둥성 둥관의 허쥔 완구공장이 전격적으로 문을 닫자 근로자들이 밀린 임금을 달라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중국 대륙이 베이징 올림픽 열기로 들떠 있을 때인 지난 8월 13일. 중국 저장성 진화시 이신제약의 정야진 회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자살했다. 정 회장은 1978년부터 제약업계에 투신해 ‘저장성 10대 유망 기업인’에 뽑혔을 정도로 잘나가던 민간 기업 경영인이었다. 그는 사고 당일 오전, 경영난 타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전체 사원 조회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 회장은 자살 전날 친구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에서 “견딜 수 없다”며 경영난에 따른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경영 여건 악화에다 거액의 부채를 견디지 못했던 것으로 친지들은 전했다.
기업인, 직원 속인 뒤 해외 도피 기업의 도산, 기업인들의 자살이나 해외 도피. ‘세계의 공장’ 중국 제조업의 현주소다.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가 꾸준히 올라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인건비 상승과 원자재 가격에 휘둘리고 있다. 인건비는 올해 초부터 근로자들의 복지 향상을 뼈대로 한 신노동법이 발효되면서 크게 뛰고 있다. 더욱이 최근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초대형 악재가 쓰나미처럼 덮치면서 상당수 중국 기업이 연쇄도산을 했거나 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
상하이의 이웃인 저장성은 중국 어느 곳보다 민간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진 곳이다. 그러나 저장성 경제를 이끌던 민간기업들이 하반기 들어 잇따라 무너지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저장성 경제 70%를 담당하던 무역이 수출 여건 악화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저장성 기업인들은 원자재 가격 인상, 위안화 평가절상, 인건비 상승, 은행의 신용대출 요건 강화에다 미국 등 해외 수출시장의 불경기가 맞물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진화시 50대 기업인 중강부동산개발의 딩칭핑 회장은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5일까지 국경절 연휴 기간 중 휴양지인 하이난다오로 ‘위로 여행’을 가자며 본사 직원 전체를 속인 뒤 부인과 함께 캐나다로 도망쳤다. 딩 회장은 당초 9월 27일, 항저우 공항에서 직원들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갑자기 일이 생겨 다음 비행기로 하이난다오로 간다고 말한 후 외국으로 피신했다. 그의 해외 도피는 대출금 14억 위안(2800억 원)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세계 최대의 가정용 재봉틀 제조업체인 타이저우의 페이웨 그룹은 지난 6월 5일 파산 신청을 했다. 올 들어 4월 말 현재 페이웨 수출 실적이 1000만 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3000만 달러)보다 훨씬 줄어드는 등 수출 부진에 따른 자금난 때문이었다. 페이웨 재봉틀 공장은 2006년 6월 기자가 직접 취재한 적이 있었다. 페이웨 그룹의 추지바오 회장은 구두 수선공 출신으로 엄청난 재산을 일궈낸 신화의 주인공으로, 전임 주룽지 중국 총리에게서 ‘나라의 보배’라는 극찬을 들은 바 있다. 공장을 찾았을 때 무더위 속에서도 넥타이와 양복 차림에 공장을 일일이 안내하던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창업 초기 광저우에서 열린 박람회에 물건을 들고 갔다가 양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한 것에 대한 뼈아픈 기억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저장성이 외국 언론에 자랑스럽게 공개했던 탄탄한 민간기업이 파산한 것은 저장성 민간기업들의 어려움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추지바오 회장은 다른 기업인과 달리 야반도주하지 않고 기업의 회생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우는 중국은 물론 세계 최대의 소상품 집산지다. 연필, 모자는 물론이고 성탄절 기념용품 등 생활용품치고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몰려든 상인들로 북적이던 이우의 도매시장들은 요즘 썰렁하기만 하다. 해마다 지금쯤이면 전 세계에서 성탄용품 주문이 몰려들어 즐거운 비명을 지를 때지만, 세계적인 불경기 탓으로 주문량이 지난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상인들은 내년 부활절 경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지만 그것마저도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대기업의 부도는 기업 하나가 무너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량을 납품하던 하청기업이나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에 일파만파로 충격을 준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저장성은 올 들어 1200여 개 사가 문을 닫았고, 상반기에만 1만7000여 개 사가 적자를 기록했다. 저장성 파산 기업들의 악성 채무는 300억 위안(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업끼리 서로 빚보증을 했을 경우 악성 채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마련이다.
세계의 공장이 중국이라면, 홍콩과 맞닿아 있는 광둥성은 ‘중국의 공장’이다. 중국에서 가장 경제가 발달한 지역인 광둥성도 중소기업들의 연쇄도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표적인 노동 집약 산업인 완구 업종이 금융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았다. 원가 부담은 크게 늘어난 반면 출고 가격은 제자리걸음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완구 생산량의 80%를 맡고 있고, 광둥성은 중국 완구 생산량의 70%를 책임지고 있다.
기업끼리 빛보증, 악성채무 눈덩이 10월 15일, 광둥성 둥관의 허쥔 완구가 전격적으로 파산을 신청했다. 홍콩 기업인이 운영하던 이 회사는 미국 마텔 등 세계적인 완구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완구 업체였다. 허쥔 완구는 지난해 9월 중국산 완구에 대한 안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량 리콜 조치로 경영난을 맞은 데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로 결국 공장 두 곳을 전격적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6000여 명의 근로자가 둥관 시청을 찾아가 밀린 임금을 갚으라고 아우성쳤고, 결국 둥관시는 근로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회사 대신 지불해야 했다. 허쥔 완구공장 파산은 금융위기 발생 이후 중국에서 일어난 첫 도산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둥관은 주강 삼각주에서 외국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곳으로 이미 상반기에만 4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수출 여건 악화에 따른 자금난이 도산의 주요 원인이다. 둥관의 현지 업계는 실제로는 이보다 10배가 많은 4000여 개 회사가 사실상 도산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광둥성 선전의 전기다리미 생산업체인 바이링다 전자는 10월 20일 문을 닫았다. 공장 근로자 1200여 명은 갑작스러운 공장 폐쇄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사주인 홍콩 기업인은 도산 직전 야반도주했고, 근로자들은 다른 채권자들이 기계 설비를 빼가는 것을 막기 위해 24시간 공장 경비를 서고 있다.
홍콩 업계는 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제 악화 등으로 내년 음력 설까지 광둥성에 진출한 홍콩 기업 4분의 1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 노동자 25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빈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주임은 “중국 실물경제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가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라는 분석도 있다. 경쟁력을 잃은 한계 기업들은 문을 닫고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양질의 인력을 확보하거나 탄탄한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