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장(浙江)성 이우(義烏)에 다녀왔다. 상하이에서 서남쪽으로 자동차로 네 시간 거리에 있는 시장 도시다. 도심지에 6만2000개 이상의 도매점포가 있으니 거의 전체가 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은 41만 개의 아이템을 거래하는 중국 최대의 상업도시다.

동남아 휴양지나 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시로 떠나는 것이 휴식과 낭만의 여행이라면, 이우행은 희망 여행이다. 이른바 ‘시장조사 여행’이다. 전 세계 주요 교역 전시회나 대도시를 돌아보며 상품이나 사업 아이템을 찾아보는 것 말이다. 여행사의 상품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혼자 갈 수도, 단체로 갈 수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직장을 잃은 사람 중 일부가 선진국으로 이런 여행을 다녀왔다. 에스프레소와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 베트남 국수점, 액세서리 점포 등의 아이템은 이렇게 한국에 들어왔다.

올 들어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최근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새롭게 시장조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엔 선진국 중심의 희망여행이 이뤄졌다면 올해는 단연 이우가 돋보인다. 아이템이 무진장이기 때문이다. 나와 있는 상품을 들여와 팔 수도 있고, 원하는 디자인과 기능의 상품을 직접 주문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필요한 기계나 도구를 구입해 국내에서 아이디어 소자본 창업을 할 수도 있다. 게다가 가격도 아직은 경쟁력이 상당하다. 그래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에게 이우는 시장조사의 메카로 통한다.

이우(중국 저장성) 글·사진=채인택 기자



어떤 곳을 돌아보나

이우 도심은 거의 전체가 도매시장이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국제상무성(International Trade City)이다. 도심에 거대한 용처럼 자리 잡은 이 초대형 상가는 이우 시장의 대표선수다. 구역별로 1~3기로 나눠 부른다. 2002년 10월 1기에 이어 2004년 10월 2기가 완공됐으며, 올 10월 3기가 들어섰다. 건물을 죽 이으면 거리가 2km에 이른다. 바둑판처럼 나뉜 내부에는 5만 개가 넘는 점포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에서 한다 하는 기업은 모두 이곳에 점포나 대리인을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현지 상인들은 ‘이우에 없으면 세상에 없다’라는 말을 한다.

1기 시장은 다양한 완구와 기념품, 조화가 핵심이다. 온갖 종류의 불교용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몰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2기 시장은 문구와 가전제품, 시계가 중심이다. 안경·의류부자재·지퍼·주방용품도 그득하다. 3기 시장은 이우의 명물로 왁자지껄하던 재래식 중국소상품시장(잡화시장)을 옮기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아직은 한산한 편이다. 휴대전화를 목에 걸 수 있게 해주는 띠를 취급하는 가게만 수십 군데에 이른다. 신발도 종류별로 쌓여 있다. 국제상무성에선 여러 제조사에서 나온 동일 품목의 디자인과 품질, 가격을 원스톱으로 집중 비교할 수 있다. 게다가 점포들이 연결돼 있어 여러 종류의 상품을 살펴보려고 할 경우, 시간과 걷는 거리를 줄일 수 있다. 이우를 중국 상품의 쇼케이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국제상무성 외에도 의류·이불·카펫·수건·넥타이 등 섬유제품을 취급하는 빈왕시장과 양말가게만 수천 개 모인 양말시장도 있다. 안경시장·화장품시장도 별도로 있다.

어떻게 돌아보나

가게에 들어가 상품을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가격을 물어본다. 말이 잘 안 통하면 상인들이 계산기에 값을 쳐서 보여준다. 위안화 기준이다. 가격만 물어보고 나간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상인들의 동의를 구하고 제품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돌아본 점포의 명함에 마음에 든 상품의 특징과 가격을 적어두면 나중에 정리할 때 도움이 된다.

다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게 한 곳을 3분만 들러도 다 도는 데 1년이 걸린다고 하니 말이다. 관심이나 자신이 있는 상품을 몇 가지 정해 집중적으로 돌아보는 게 요령이다.

6년째 이우와 거래하고 있는 대신무역 이대규 대표는 “엄청난 규모라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다니면 지칠 수가 있으니 중간중간 쉬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벤치와 음료수를 파는 자판기가 놓인 휴식공간이 곳곳에 있다. 하루에 20만 명의 바이어가 방문하지만 시설 규모도 그만큼 크기 때문에 붐비지 않고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다. 화장실도 깔끔한 편이다. 다만 새 상품이 쌓인 상가가 밀집돼 있다 보니 화학제품 냄새로 실내공기가 그리 좋지는 않다.

상가에는 식당관이 별도로 없으며, 상인들은 점심시간도 따로 없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가게에 앉아 배달시킨 도시락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기 시장의 4, 5층에는 한국상품을 소개하고 거래하는 한상관이 있는데, 직원 구내식당을 25위안에 이용할 수 있다. 오후 3시까지 연다.

이우 시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휴일이 없다는 점이다. 현지 무역회사 직원 박성현씨는 “시장은 물론 은행도 토·일요일과 국경일에도 문을 연다”며 “최대 명절인 춘제(음력 설) 때 한 달 남짓 몰아서 쉬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개장은 오전 8시고 오후 5시 이후에는 모두 문을 닫는다. 문제는 출퇴근 시간대 혼잡이다. 20여만 명의 상인과 직원들이 거의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1시간30분가량 길이 꽉 막힌다.

이우에는 한인 민박집이 20군데가 넘는다. 호텔도 110위안 정도 하는 변두리 빈관(여관급)부터 국제 수준의 시내 호텔까지 다양하게 있다. 광대국제여행사(현지번호 0579 380 5995)라는 한인 여행사도 있어 편의를 제공한다.

기획 채인택 | 포토그래퍼 채인택 | 조인스



현지 한인 사업가들의 충고

정욱환 국제상무성 한상관(한국 제품 코너) 부회장
이우 관련 사업을 하려면 충분한 준비가 필수다. 특히 이우에 머물면서 사업을 하려면 중국어를 상당히 준비해야 한다. 시장에서 물건을 둘러보는 것은 기초 중국어만으로 가능할 것이다. 중국동포 통역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에 따르면 최소한 어느 정도 중국어를 이해해야 제대로 사업을 펼칠 수 있다. 이우에서 한국 상품을 팔든, 이우 상품을 한국에 가져가 팔든 마찬가지다.

마음가짐도 단단히 하고 와야 한다. 이우에 기회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이에게 사업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강대성 한인상회(한인회) 사무총장
강대성 한인상회(한인회) 사무총장 상품은 얼마든지 있다. 이우에서 물건을 포장해 한국으로 운송해 줄 물류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문제는 국내에서 물건을 구매해 줄 바이어를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사례가 하나 있다. 2003년 어떤 분이 우연히 이우를 방문했다가 엄청난 시장 규모에 반해 국내 사업을 정리하고 이곳에 사무실을 냈다. 의욕적으로 일했지만 5~6개월 만에 사업을 접었다. 문제는 국내에 판로를 뚫지 못한 것이다.

좋은 아이템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검수해서 불량품을 잡아내어 더욱 완벽한 상태로 바이어나 소비자에게 넘기느냐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해야 한다. 이런 건 노하우에 해당하는 것이라 몸으로 부닥치며 배울 수밖에 없다.기획 채인택 | 조인스




Tip
■가는 길=한국에서 이우로 바로 가는 직항편은 아직 없다. 우선 인천에서 상하이·항저우·닝보로 간 뒤 육상으로 이동해야 한다. 대한항공·아시아나·중국 동방항공 등이 인천과 부산·대구 등에서 상하이 푸둥 공항으로 다니고 있다. 김포에서 출발해 도심에서 가까운 훙차오 공항으로 가는 노선도 있다. 항저우의 경우 인천과 부산에서 운항한다. 닝보는 인천에서 떠나는 항공편이 있다.

상하이 남역에서 이우까지 2시간10분쯤 걸리는 고속열차가 다니고 있다. 요금은 110위안 정도. 상하이 출발이 하루 세 편, 이우 출발이 하루 두 번 있다. 이우에서 푸둥 공항까지 다니는 완행열차도 있지만 5시간 넘게 걸린다.

상하이 푸둥 공항과 항저우·닝보의 공항에서 이우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는데 저녁 늦게는 다니지 않으므로 사전에 시간을 세심하게 확인해야 한다. 급할 경우 여러 명을 모아서 출발하는 승합차를 이용할 수 있으나, 보험 등에 문제가 있어 권하고 싶지 않다.

■정보=인터넷 사이트로는  eu114(www.eu114.com), 이우 가이드(등이 있으며, 주요 포털에 관련 카페도 개설돼 있다. 모든 정보는 확인이 필수다.기획 채인택 | 조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