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중국은 산유국인 러시아·브라질·베네수엘라와 동시에 에너지·경제협력 논의를 시작했다. 중국은 이들 국가에 장기 저리로 수십억~수백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할 테니 대신 원유·가스 장기 도입 계약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는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40~50달러까지 떨어졌던 때. 이로 인해 재정난에 허덕이게 된 산유국에 2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가진 중국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려고 접근한 것이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6월 말 현재 2조1316억 달러에 달한다.
러시아는 250억 달러의 차관을 장기 저리에 제공받는 조건으로 2011년부터 20년간 하루 원유 30만 배럴씩을 중국에 공급하기로 했다. 공급 가격은 밝히지 않았다. 30만 배럴은 중국 하루 원유 소비량의 3.6%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중국은 또 브라질에 108억 달러를 빌려주고 내년부터 10년간 하루 원유 20만 배럴을 받기로 했다. 해상광구 두 곳의 탐사권도 덤으로 얻었다. 금융위기 때문에 구멍난 재정을 당장 메울 ‘돈’이 필요했던 자원 보유국과, 돈은 넘치지만 자원이 필요한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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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올 상반기에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중남미의 베네수엘라와도 같은 방식의 계약을 했다. 한국석유공사는 24일 ‘중국의 전방위적인 자원확보 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은 막대한 외화를 안정적으로 굴리면서 자원까지 확보하는 방안으로 이 같은 ‘자원 연계 차관(Loan for Oil)’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올 상반기에 ‘자원 연계 차관’ 형식으로 투자한 돈이 455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은 ‘자원 연계 차관’뿐 아니라 자원 기업과 유전·광산을 직접 인수하는 데도 돈을 쏟아붓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에너지 기업과 광구 인수에 모두 154억 달러를 들였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현재 미국 코스모스에너지와 30억 달러 규모의 아프리카 가나 유전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다. 올 상반기에 세계 3위의 철광산 회사인 호주 리오틴토 지분 18%를 무려 195억 달러에 사들이려다 자원 안보를 생각한 호주 정부가 이를 막아 무산되기도 했다.
◆한국에 불똥=올 들어 한국은 해외 자원 인수전에서 중국의 막대한 자금력 앞에 잇따라 무릎을 꿇었다. 스위스 석유회사 아닥스 인수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석유공사가 중국석유화공(SINOPEC)과 맞붙었으나, 석유공사보다 3억 달러가량 많은 72억6000만 달러를 써낸 SINOPEC이 아닥스를 가져갔다. 아닥스가 소유한 나이지리아·이라크 등지의 유전도 고스란히 중국에 넘어갔다. 호주 광물기업 팬오스트가 매물로 나왔을 때는 한국광물자원공사가 5000만 달러를 제시했으나 중국이 그 세 배 가까운 1억4200만 달러에 이 회사를 샀다. 자금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부족한 자금력을 보충하기 위해 1조원 규모의 자원개발 펀드를 만드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가 1100억원을 종잣돈으로 대고, 민간 투자자금을 모아 조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1조원을 조성해 봐야 8억~9억 달러 정도로, 중국이 올 상반기에 해외 자원개발에 쏟아부은 609억 달러(자원 연계 차관 455억 달러+직접 투자 154억 달러)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 수준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김필수 연구원은 “경제 규모의 차이 때문에 자금력으로 중국과 경쟁할 수는 없다”며 “자원 보유국이 원하는 기술을 주고 자원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패키지 딜’도 이 같은 ‘기술 딜’의 하나다. 사회 기반시설이 부족한 자원 국가에 발전소·도로·정보통신망 등을 지어주고 기술도 일부 이전하는 대가로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해외자원개발협회 이철규 자원개발실장은 “미국과 캐나다는 안보 차원에서 중국이 자국 에너지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을 일부 제한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중국과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이런 시장에서 M&A 대상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학 지식경제부 차관은 “중국의 손이 닿지 않는 해외 중대형 석유업체 5곳과 단독 인수 협상을 하고 있다”며 “조만간 한두 곳을 인수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