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버는 재미가 가득한 중국무역 :::EU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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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을 떠나면서~~   ( 조회:5366 / 0 ) 이우114  

내가 마흔 살인 1990년 5월에 홍콩을 경유해서 중국 북경에 첫 발을 딛고

2008년 12월에 중국의 모든 터전과 생활을 접고 완전 귀국하는데 18년을 헤매이며 느꼈던 희,노.애.락.을

반추해보니 좋았던 추억보다는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에서 부딪혔던 아픈 기억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회없이 이방인으로서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흑룡강성 溪西부터 남단의 桂山島까지 40 여 지역 어느곳에서는 살면서, 또는 업무차,관광차 둘러본

지역이 생각보다는 많군요.

일반 인민 내륙인들은 소박하고 순수하기가 우리 예전 농촌마을의 전형이더군요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지만 해안 도시와 인접 도시는 경제적인 손익에 관한 한 누구도 이길 수없는 빠른 두뇌회전...

만만디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고 걸음걸이만 그렇고 공무원,은행.등의 민원 업무만 그렇습니다.

거래상 이득이 되거나 돈을 받을 때 (세금,벌금,공과금,)는 눈썹이 휘날리게 빠릅니다.

양보나 배려를 상상하는 사람이 바보거나 오늘 처음 입국한 외국인 입니다.

중국에서 엄청난 돈도 손해 봤지만 버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벌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집을 다 정리하고 보니 손에 쥐어져 있는 돈은 두 사람 항공비 밖에 없네요.

술도 좋아하지 않고 해서 카라오케 한 번 가본 적이 없는데.....

 

중국에 주재원이나 자영업,보따리 무역이든.쉽게 돈이 보이고 화폐단위를 보고

쉽게 지갑을 열게 됩니다.물론 이전까지는 한국 대비 물가는 쌌습니다.지금은 쌀 값 빼고 거의 같지만...

내일 모레 60을 바라보며 인터넷도 없었고 한국마켓도,한국인도 귀한 시절에 와서

몸과 마음 고생을 엄청나게 했습니다.상황이 발생하면 데리고 있는 조선족한테 의뢰하고

돈은 내가 지불하지만 결정권이나 선택도 통역인 조선족의 의중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너무나 잘 아는 조선족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처음 사업시작해서 조선족만 40~50 명 채용했으니

그 뒷 담화는 여러분의 생각과 결론이 같습니다.안타까운 현실 입니다.

 

그러나 막상 한국으로 일단은 돌아가는데 중국에서 오래 살았으니 중국통이라 여기고 중국에 대해서

물어보면 아직도 확실한 답을 못 합니다.아직도 잘 모르고 모르는 게 많습니다.

얼마 전에 중국에 온 사람이 저 보다는 다방면에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더군요.

그나마 카페란 사이버 공간이 있어서 이렇게 글도 쓰고 정보도 얻지만 말 입니다.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살아가는데 현실적으로 제일 가깝고 부모 형제,친구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인 인터넷 카페라고 봅니다.

여기에 오고가며 주고받는 글을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최소한의 예를 지키고

비록 태클이 들어와도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려러니 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대화와 교제의 장이

되기를 빕니다.최근에 우리 외국인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비자 문제인데

일부러 여러 회원님들께 도움이 되기위해 손바닥 보듯이 세심하게 현장 사진과 부가 해설까지

붙여서 알려주신 바모스님의 게시글을 봤을때 정말 감동적이었고 한국인이 베푼 배려가 여지껏 살면서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애석하게도 아직 정식 통성명도 못했고 뵌 적도 통화 한 적도 없지만 말입니다.

역시  한국의 남자는 정이 많고 나눔의 행복을 아는구나 하고 생각 했습니다.

반면에 어느 몇 군데 카페는 한국인을 위하는 척 갖은 이벤트와 사탕발림으로 장삿속이 보이기도하고

정녕 당면한 한국인들의 비자 문제는 단 한 줄 고민의 흔적도 없고 자기 하는 사업만 열심히

광고 하는 걸보고 역시 베품은 진실성이 우선이고 마음에서 나온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대련에서 코리아 타운을 조성하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동해공원 가는 길목의 대단위 고급 아파트 단지가 있고 2500 평 대지에 6층 건물이며

맨 윗 층은 오피스텔로 만들어진 국가 소유 건물을 10년 간 파격적인 평당 1원씩 사용키로하고(타 상가는 9원)

한국인 입점자를 모집했는데 서로 좋은 자리만 차지하려고 했고 단결은 안하고 두고 관망한 후에

입점한다고 해서 대련시 정부에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대련은 6번 째 한국 상가란 타이틀을 걸고

오픈해서 모두가 실패로 끝났습니다.저도 한국상가에서 매장을 했기에 한국인들한테 터무니 없는

임대료와 관리비를 착취하는데 분개했고 조선족 여성이 임대권을 받아서 재 분양한 상가 입니다.

한국인들 비자도 코리아 타운 자치회의 추천서를 첨부하면 Z 거류비자를 발급키로 합의도 있었습니다.

결국 좋은 일하려다 손해만 보고 실망감에 대련을 떠났고 의류를 했기에 본 고장을 찾아서 광저우로 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제 매장에 판매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제조를 하다

보니 주위 매장에서 오더를 주어서 납품을 했는데 상시 중국에만 있는 관계로

결재가 제대로 안되고 나중엔 두 군데 거래처가  6천 만원 횡령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더위와 싸우면서 젊지않은 나이에 더위와 싸우면서 음식이 맞지않아 도시락을 싸가지고 차에서 먹으면서

한 눈만 잠깐 팔면 불량과 문제만 생기는 공장과 싸우면서 납품했던 결과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였지만. 나아지겠지 하며

지냈는데 갈수록 한국의 의류시장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불경기다 보니  머리에 서리가 더 내리기 전에

빨리 떠나는게 현명하다는 판단에 짐을 쌌습니다.

 

 미국에서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두 달 전에 결혼한 딸도 있고

처가가 모두 미국에 살고 있고 기반이 잡힌사업체를 운영하고 있기도해서 결정을 쉽게한 것 입니다.

또한 목회하는 죽마고우의 도움으로 이민을  결심했습니다,

2년 전 부터 미국 시장을 조사하고 사업 타당성과 영주권 문제를 심도있게 알아보았고

그래도 중국 광저우에서 의류도 해봤고 다른 품목도 접해 봤기에

미국의 시장에 접목 시킬 방법을 고민 했습니다,

그 방법을 찾았고 거래처도 발굴했는데 그만 미국의 경제 위기 상황이 갑자기 불어닥쳐

걱정이 됩니다.생활 영어만 하는 실력 가지고 비지니스 영어를 해야하는 중압감도 있습니다.  

아무튼 또 학창시절로 돌아가서 열심히 영어 공부 해야지요.

 

어려운 중국의 생활이지만 그래도 저 같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 없이

회원님들의 활기찬 활동을 지켜보며 모든 분들이 꼭 성공하시길 빌면서

카페가 생각이 나면 들어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 동안의 경험으로

얕은 정보지만 댓글을 열심히 달고 애정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며칠 후 일단 한국에 들어가서 형제와 친구를 만나서 낭만어린 겨울의 포장마차에서

연탄불 쬐며 꼼장어에 오뎅국물을 곁들인 소주 한 잔 마시고 싶습니다.

 

저녁이 되면 요즘 환률 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카페 글을 보시는 회원님이 계실 것 같아

조금 길게 썼습니다만 문장력도 없고 퇴고도 안했기에 틀린 글자가 있어도 이해 해 주십시요.

돋보기가 오래되어서 새로 맞춰야 합니다~~~.

여러분 행운을 빕니다~~!!


 

: 상인의 천국 이우시장 활용법
: 중국에 처음 오시는 분들이 알아야 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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