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국의 최고 부자촌으로 널리 알려진 화시(華西)촌에 갔다가 북한 여성들을 만났다.
그날 오후 북한 여성 10여명이 화시촌의 최고 빌딩인 72층짜리 룽시(龍希)호텔 대형 연회장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무대에 올라가 악기를 연주하거나 마이크를 들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무대 아래에서 공연 지도를 하던 책임자급 여성에게 "무슨 공연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손님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춤은 다 공연한다"고 했다. 룽시호텔은 3억위안(약 540억원)을 들여 만든 1t짜리 황금 황소상과 하룻밤 숙박비가 9만9999위안(약 1800만원)인 최고급 객실로 유명하고, 관광객과 대기업 단체 손님이 많이 오는 곳이다.
상하이 서북쪽 장인(江陰)시에 속해 있는 화시촌은 잘살기는 하지만 대도시가 아닌 농촌이고 북한에서 먼 곳이다. 중국의 웬만큼 큰 도시에선 북한 식당과 북한 여성 종업원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장쑤(江蘇)성이라는 남쪽 농촌에 북한 여성이 집단으로 파견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 여성들이 화시촌에 온 것은 작년 10월 룽시호텔이 문을 열면서부터다. 룽시호텔에서 북한 측에 파견을 요청했다고 한다. 북한 여성에게 "몇 명이 왔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걸 왜 묻느냐"며 입을 닫았다. 대신 옆에 있던 마을 당 위원회의 자오즈룽(趙志榮) 부서기가 34명이라고 귀띔해줬다. 일부 언론은 북한 여성들이 룽시호텔에서 공연하는 한편 호텔 업무도 익히고 있다며 북한 정부가 중국식 농촌 개혁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호텔 관계자는 "북한 여성들이 식당에서 공연하거나 서빙하고 있을 뿐 호텔 경영이나 업무에 관한 학습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 여성들은 공연 때 북한 노래뿐 아니라 중국 노래도 부른다. 자주 부르는 북한 노래는 아리랑과 도라지 등이며 중국 노래는 좋은 날, 칭짱(靑藏)고원, 모리화 등이라고 한다. 호텔 직원 뤼(呂)모씨는 "북한 여성은 대부분 고관의 딸"이라며, "한 달 월급이 6000위안(약 100만원) 이상이지만 북한 여성에게 직접 지급되는 돈은 150위안(약 2만7000원) 정도이고 나머지는 북한 정부에 지급된다"고 말했다.
북한 여성들의 숙소는 화시촌의 행복원(幸福苑) 내 저렴한 호텔에 있었다. 3명이 한방을 쓰는 숙소엔 컴퓨터가 없고 시청 가능한 채널이 몇 개로 제한된 TV만 있다고 한다. 북한 여성들은 인근 가게에서 비누 등 일용품을 사러 자주 나타나지만 다른 외출은 거의 없다고 현지 당 위원회 관계자는 소개했다.
화시촌은 잘사는 중국과 곤궁한 북한을 극명하게 대비해주는 현장이었다. 중국이 개혁 개방으로 급성장하면서 중국과 북한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몇 년 전 북한을 처음 여행했다는 한 중국 기자가 한 말이 떠올랐다. "북한 마을에 들어서니 우리 문화혁명 때 모습 그대로여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못살 수가 없더라. 사람들 생각도 꽉 막혀서 당분간 희망이 없어 보이더라." 부자 동네 화시촌의 잘사는 모습을 보러 갔다가 돈 벌러 머나먼 이역에 온 온 북한 여성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겹치면서 우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